• 구유나
  • BBC 코리아

2022년 8월 23일

한국에서 많이 먹는 '먹방'이 아닌 적게 먹는 '소식 먹방'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먹방(Mukbang)'.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먹는 모습을 촬영해 올리는 것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외국에서도 신조어로 굳어졌다.

지금까지 인기를 끈 건 많은 음식을 한 번에 먹는 먹방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와 정반대로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 '소식' 먹방이 유행하고 있다. 소식하는 사람들은 '소식좌'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식 먹방'이 TV와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1년 남짓. 아직 수십~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기존 먹방을 대체할 정도의 대유행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소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하게 먹는 것'

유튜버 수하(본명 박수하)는 예전부터 '소식 먹방'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반인 유튜버 중 한 명이다.

한 영상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떡볶이를 시켜 어묵 몇 줄, 메추리알 몇 개, 치즈와 양배추를 조금 먹고는 배가 부르다며 식사를 마친다.

수하는 BBC 코리아와 인터뷰에서 2년여 전부터 소식 먹방을 올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최근이라며 "요즘 (소식 먹방 인기를) 정말 많이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돈가스 하나를 다 먹기 힘들 정도로 입이 짧긴 했지만, '소식좌'로 불리는 연예인들이나 다른 일반인 소식 유튜버들처럼 '다이어트' 목적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다. 수하는 프리랜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하는 "거의 굶는 식의 다이어트를 시작으로, 온갖 다이어트를 시도하면서 감량과 실패를 계속 겪었다"며 "다양한 다이어트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히 먹는 습관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가장 만족도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하는 일부 연예인들처럼 절식에 가까운 소식 먹방을 하진 않는다. 1인분보다는 조금 적은 양을, 느리게 먹는다.

"사실 저는 소식이라는 게 무언가 대단하게 마음을 먹고 꼭 얼마만큼의 양을 지켜야 한다 이런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든지 정해진 1인분보다 조금 덜 먹는다면 소식 아닐까요?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하게 먹는다는 점이 중요하죠."

사람들이 '소식 먹방' 보는 이유는?

전문가들은 최근 소식 먹방 유행에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존 먹방에 대한 피로감도 있지만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댓글을 통해 "소식좌를 보면서 쓸데없이 과식하고 산 건 아닌지 새삼 느낀다", "소식이 식량문제와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식사법인 것 같다", "대식은 하고 싶어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등 소식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건 건강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관심이다.

음식을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하는 "영상을 보면서 천천히 먹는 습관,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연습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 덧붙이자면 이전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소식 습관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시사IN·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기후위기가 나의 일처럼 가깝게 느껴진다'는 답변이 64.5%로 절반을 넘었고 기후 위기의 주된 원인이 '인간 활동'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6.7%였다.

지구와 내 몸을 위해, 지속가능한 식사는?

반면 단식이나 절식에 가까운 '극단적 소식'이 거식증 등 식이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후미식'의 저자인 이의철 직업환경의학·생활습관의학 전문의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한다면 적게 먹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무작정 적게 먹는 것은 건강을 해치기 딱 좋다"며 "매끼마다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면서도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게 지구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지속가능한 식단"이라고 말했다.

"식물성 식품은 같은 양을 먹어도 동물성 식품에 비해 칼로리가 굉장히 적고 칼로리 대비 음식에 포함된 영양소는 훨씬 더 많습니다. 식물성 식품 위주로 식사할 경우 칼로리 측면에서 분명한 소식이 되는 거죠."

다만 식물성이라고 해서 다 영양소가 풍부한 건 아니라며, 식용유나 설탕 등을 제외한 자연 상태의 식물성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특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동물성 식품 대신 순식물성(완전 채식) 식품을 섭취할 경우 2050년까지 매년 온실가스 약 80억 톤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먹는 방식' 존중해야

이외에도 '소식 먹방' 인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손꼽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인 원인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실질적으로 경기가 그렇게 좋지 않아 많이 먹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아끼고 적게 먹어서 충분한 효율을 내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먹방 콘텐츠가 극단적으로 많이 먹거나 적게 먹는 형태를 벗어나 보다 다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먹방은 원래 굉장히 다양해야 돼요. 사람마다 먹는 습관이 다 다르니까요. 먹방에 이런 다양성이 담겨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잘 먹는 것, 과도하게 많이 먹는 것에 많이 집중돼 있었죠. 이제는 (많이 먹는 먹방에서 오는 재미보다) 자기한테 맞는 식습관을 확인하고 공감받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소식을 포함해서 먹방이 점점 더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동영상 설명,

'볼륨을 높이고 들어보세요,' 새끼 다람쥐 먹방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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